새해
임기린
거울에 비친 벗은 몸을 보다가 걸어서 십 분 거리에 있는 헬스장에 갔다
고객님은 근육량은 낮고 지방은 많으신 편이세요
피티를 등록했다 특가라고 했다 지금이 일 년 중에 가장 저렴하다고
돌아오는 길에 시장에서 소고기를 샀다 얼마나 필요하냐고 해서
한 사람이 먹을 거라고 했다 핏물 떨어지는 한 주먹의 살덩어리
수입산이라 저렴해요 싼 것은 쉽게 버려지고
쓰레기장을 지나치다가 갈색 유리병 하나를 주웠다 예뻐 보여서
새로 산 노트의 비닐을 뜯었다 첫 페이지에 정신을 차리자고 적었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정말로 늦은 거라고 적었다가 지웠다 지운 자리에는 흔적이 남았다
냄비에 불을 올렸다 고기를 넣었는데 피를 닦지 않아서
연기가 많이 났다 근데 작년 이맘때 죽은 사람의 기일이 언제였더라
새로 산 노트에 쓸 거리들이 늘어나고 지방이 적은 부위는 잘 달라붙는다
탄 냄새가 난다 소분된 사골국물을 뜯어 냄비에 넣는다 떡을 냉장고에서 꺼낸다
유통기한이 지나있다 정리를 해야겠지 정해진 시점을 넘긴 것들에게서는 냄새가 난다
목욕을 가야겠어 떡국을 먹으면 한 살을 더 먹는 거라고
그런데 왜 나이는 먹는다고 할까 어른은 어떻게 되는 걸까
목욕탕에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면 울 것 같은 기분
벌거벗은 사람들은 죄다 근육량이 낮고 지방이 많아보였다
물속에 가득한 사람들 견디고 견디는 사람들 참는 표정은 모두 제각각이다
나는 내 표정을 보지 못한다 그러나 포기하는 사람의 표정 얼마나 홀가분한지
바나나우유를 사먹어야지 칼로리가 몇일까. 얼마만큼의 지방을 축적시킬까
쪽쪽 빨아먹으며 앉아있었다 문을 열고 나오는 사람들 막 불길에서 빠져나온 듯 펄펄 연기를 쏟으며
온통 시뻘갰다 뚝뚝 떨어지는 물방울 몸을 닦고 나와야 한다고 누가 소리를 지르고
사람들은 거울을 통해 벗은 몸을 본다 아는 몸인데도 자꾸 부끄러움도 없이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추웠다 숨을 쉬면 숨이 보였다
선명하게 계속되는 유리창에 비치는 나의 실루엣
유리병에 꽂을 꽃을 사야지 그러나 가게들 문 닫은 밤이었고
내일이 있으니 괜찮다고 가끔은 늦어도 괜찮은 것들이 있다고
중얼거린다 지나치는 건물의 유리창 너머 러닝머신을 뛰는 사람들이 많았다
너무 많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