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로보빵 시 메일 2
안녕하세요.
SBI 20기 편집자반의 시 창작&낭독 동아리 [소보로빵]입니다. 그리고 저는 구보👓입니다.
저는 이번 시 창작의 주제를 1) ‘돼지’로 빠르게 정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받는 돼지 인형을 한 마리 알고 있기 때문인데요. 처음엔 신기하게만 바라보다가 어느새 저 자신도 그 돼지를 사랑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사랑이란 참 불가해하면서 특별한 것이죠. 하지만 제 의도에 갇히지 않고 다양하게 뻗어나가는 걸 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주제를 ‘돼지 인형’이 아니라 ‘돼지’로 정했습니다.
두 번째 주제는 2) ‘물음표 상자’입니다. 저는 게임 슈퍼마리오를 아주 좋아하는데요. 그래서 집에 물음표 박스 모양의 레고가 있어요. 주제를 찾아 방을 둘러보다가 물음표 박스 레고가 눈에 들어와서 주제로 정했습니다. 게임을 해보면 물음표 박스는 안에서 뭐가 나올지를 몰라서 그냥 지나칠 수는 없는 존재입니다. 다양한 함의를 담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봤습니다.
중요한 소식 하나! 지난 메일에서 구독자명 공모를 받았는데요. 빵야, 빵먹자, 독자빵 등등 정말 많고 쟁쟁한 후보를 제치고 동아리원의 만장일치로 '빵먹자'🥖가 구독자명으로 선정되었습니다!! (짝짝짝)🥳
빵먹자들 앞으로도 잘 부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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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보의 방에 있는 물음표 레고 상자
구보가 직접 레고로 한 조각 한 조각 조립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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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선정에 대한 질문
구보
실패한 외모로 일단 물음표 상자°에 머리를 박는다
가령 가령이나 가정하여 말하여, 가사, 가약
이런 말들이 다 나오지는 않는다 알고있는데도
나는 내가 모르는 것들을 기대한다
친구는 깎지 말아야 할
수염을 깎고 왔으니 될게 있겠냐고
관중처럼 야유한다 우- 다음-
다음 물음표 상자는 문장 왼 끝으로 도망가 좌우 반전을 일으킨다
나만이 상자에서 나온 것에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한다
나만이 모자 속 머리가 사실은 다듬은 것이란 걸 알고 있다
어제의 내가 아니라 여기의 나만이 선택을 요구한다
1부와 2부가 나뉘는 곳에서
이 책갈피를 끝 시 뒤에 꼽을까 첫 시 앞에 꼽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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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음표 상자 : 게임 ‘슈퍼 마리오’ 시리즈에 나오는 상자. 아랫면과 윗면을 제외한 모든 면에 물음표가 그려져 있다. 마리오의 머리로 박거나 엉덩이로 찧으면 무엇인가 나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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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보의 시작노트
저는 외국어를 잘 못합니다. 머릿속에서 작문이 완료가 되어야 입 밖으로 문장을 내뱉을 수 있는 종류의 인간이어서요. 생각해보면 시를 창작할 때도 그런 식으로 했던 것 같아요. 구조와 논리를 제 안에서 완성을 하고서 만들고 내놓는 것이죠. 하지만 내가 좋아했던 시들이 다 그러했는지 생각해보면 그렇지만은 않았던 것 같아요. 창작 과정이야 정확히 알 수는 없겠지만, 우리가 사랑하는 시가 늘 모두에게 모든 걸 설명할 수 있는 시인 것은 아니죠. 그래서 이번엔 모든 게 조립되어 꽉 닫히기 이전에 시로 만들어보자고 생각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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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죽지 않는 시🐽
파란
이 시에서 돼지는 살아 있습니다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런 것을 걱정하기나 했다면
상자에 넣습니다 뚜껑을 닫고 흔듭니다 간이 잘 배도록
짭쪼롬 끈적하고 눅진한 양념
돼지는 핥아 본다 맛이 참 좋다 쩝쩝
소리 들리는 것 같은데
돼지는 인간의 말 모른다고 했으니까
넘어갑니다 늘 그랬듯
비명
뚜껑을 여는 칼이 없습니다
토막나는죄가없습니다
벌을 받습니다 기막히게
입맛을 돋우는 음식이 되어
포크를 들고 써는 순간 썰려 나가는
모가지
발
껍데기
부위별로 맛있게
떨어지는 피 피 피 피
너의?
상자를 열자 먹음직스러운 요리
고기 굽는 냄새
너도 그랬겠지 맛있었겠지 그러나
죽지 않습니다
돼지는
새벽이 옵니다 밝은 미소 천천히 잔디로 발을 옮깁니다
목욕을 하고 죽순 먹어야지 그전에
산책하러 간다 접시 버려둔 채 우리는
고구마 먹는다 냠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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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벽이생추어리에는 두 마리의 돼지가 살고 있다. 먼저 온 새벽, 두 번째로 온 잔디. 두 친구는 한 시간씩 산책하지만 더 넓은 땅을 밟고 싶다. 지구상에 새벽도 잔디도 없는 땅이 있을까? 있다면, 있어야만 하는 걸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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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의 시작노트
처음에는 복수하는 시를 쓰고 싶었습니다. 인간을 마구 썰거나 튀겨 먹는 돼지의 반란 같은 것.
그 다음에는 화해하는 시를 쓰고 싶었는데요. 이 생각은 아주 잠깐, 대략 5초쯤?
그래도 복수를 해 보자고 마음을 먹었는데 고칠수록 그럴 필요가 있을까 싶었어요.
복수하지 않아도 돼지는 돼지의 삶을 산다. 뚜벅뚜벅.
너희는 그런 존재에 가까울 수도 있으려나. 인간이 아니니까.
하지만 벌을 받으려는 제 마음은 멈추지 않더라고요.
그렇게 썼습니다.
사랑스럽고 씩씩한 두 친구를 소개합니다.
https://youtu.be/T9CAP8Vy_eA?si=mL2_qB1ECJTbDCF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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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은 말이 없다
데이먼 알밤
너는 너무 많이 버리지. 네가 종량제 봉투 안에 쓰레기를 욱여넣으면 나는 봉투 안에 발을 넣고 밟는다. 너와 내가 사는 건물은 벽이 얇다. 가끔 새벽에 깬 너의 발걸음을 듣는다. 양해를 구하기 위해 너를 찾아간다. 나는 봉투 안에 발을 넣고 밟는다. 인터폰이 울린다. 나도 모르게 인터폰을 귀에 댄다. 선생님 빼고 다른 사람들은 분리수거 잘만 해요. 너는 아무 말도 않고 수화기를 뺏어 간다. 하지만 버릴 게 너무 많잖아. 너는 계속 어딘가에서 쓰레기를 가져오고 나는 발을 집어넣는다. 딱딱한 것이 발에 닿는다. 그것이 부서진다. 발랄한 소리가 들리며 종량제 봉투는 터져 버린다. 너는 계속 밟아 보라고 말할 뿐이다. 초인종이 울린다. 시청 환경과에서 나온 사람들이 우리를 데려간다. 나는 공범이 아니다. 그저 오늘 집에 친구들이 올 예정이고 양해를 구하기 위해 들렀다고 해명한다. 공무원은 그게 공범이라고 말한다. 너는 공무원에게 말한다. 버릴 게 너무 많잖아요. 분류할 수 없을 만큼 많습니다. 다시 집에 들어가 보시죠. 공무원은 말이 없다. 나는 친구들이 집에 올 예정이기 때문에 가봐야 한다고 말한다. 공무원은 말이 없다. 우리는 계속 공무원을 따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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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이먼 알밤의 시작노트
합평이 끝나고 소보로빵 친구들이 “그래서 뭘로 쓴 거야?”라는 질문을 했어요. 주제에서 너무 멀어져 버려 송구스럽습니다. 물음표 박스를 오래 생각했어요. 게임에 등장하는 아이템(?)이죠. 게임 속 데이터들도 쓰레기처럼 어딘가에 보관되고 사라지겠죠. 그러다 쓰레기를 버리지 못하는 사람들, 반대로 쓰레기를 무분별하게 버리는 사람들을 생각하게 됐어요. (지난 메일링 때부터 더러운 것에 집착을 보이는 것 같은데….) 이 시는 물음표 박스가 종량제 봉투 안에서 부서지며 새로운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알밤이 쓸 새로운 시도 기대해 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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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비드
임기린
익은 살은 너무 희고
뜨겁다 살아있는 것 같이
빨개진 손을 붙잡고 앉은 나는 울고 싶다
삭아서 부러진 코르크를 쥐고
열린 창으로 와인을 던진다
어둠은 무엇이든 잘 삼키고
놓아주지 않는다
소리는 적막을 깨고
색깔은 흔적을 남기지
무슨 사건이라도 일어난 것 같이
내가 비로소
사라진 것만 같이
돼지고기는 흰 살 육류로 분류되므로 화이트 와인이 어울린다
레드 와인은 어디든 울컥 쏟아버려도 된다고
배웠다 붉은 핏물이 밴 고기는 연기가 많이 나므로 수분을 잘 제거해야 한다고
살이 타는 냄새가 싫어
살아있을 때를 상상하게 하니까
죄다 정리되는 기분이 드니까
화장터의 작은 창 너머로 불길 새어나올 때
전부 쏟아내던 사람들
다 끝나기도 전에 쉬러 간다
화이트 와인 마셨어
몸이 와인통이 되는 기분
아니? 푹 찌르면 투명한 와인 질질 새면서
엉망으로 무너지는 그 기분
자 짠, 하자
내일이 오늘보다는 덜 끔찍하길
우리 집에는 와인잔이 하나 뿐이지만
그래서 아무 소리도 낼 수 없겠지만
서서히 익은 고기는 부드럽고 그럴수록
밤의 경계는 흐릿해진다
마치 내가 살아 있는 것만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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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기린의 시작노트
살이 회 쳐진 채 입을 뻐금대는 우럭은 살아 있는 것일까. 트랙에서 동강난 채 꿈틀대는 지렁이는 살아 있는 것일까. 사람이 죽었을 때 삼일장을 하는 이유는 그 사람이 어쩌면 다시 깨어날 수도 있어서라고 하는데, 그러면 그 사람은 죽은 걸까. 죽지 못해 사는 사람은?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한 채 빌빌거리며 자기 밑바닥을 떠도는 사람들은 살아 있다고 볼 수 있나?
김이 풀풀 나는 완벽히 익은 돼지고기 한 덩어리.
그걸 상상하면서 기분이 좋지 않았습니다. 한때 살아 있었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아서요.
그러나 그것도 살아있던 때가 있었겠지. 서서히 익어가며 시나브로 생명력을 잃어갔겠지. 맛있는 냄새를 풀풀 풍기면서.
기분이 안 좋다. 시를 쓰면서 계속 그런 생각을 했고, 그 감각에 집중했던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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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수준으로 널 판단할 수 있다는 개소리
부스럼
선생님, 그거 아세요?
사실 산타클로스는 한국인이고
고등학생 때는 담배깨나 피웠고
가출도 몇 번 했으며
성인이 된 지금은 질문을 받으려고 온
세상 아이들에게
선물을 나눠주고 다닌대요
매일
노란색 색지에 정사각형의 도안을 그리고
가위로 잘랐다
여섯 개의 면 중
한 개의 면에 물음표를 그려 넣었고
풀로 붙여 완성했다
물음표가 안쪽에 새겨진
진짜 물음표 상자
그래서 저는 올해
크리스마스트리 밑에 물음표 상자를 놓아두려고요
선물을 주려고
온 산타클로스가 질문을 받고
기뻐하며
내용물이 무엇인지 물으면
전 답하는 거예요
웨 알 유 프롬?
선생님, 저는요
선물을 받자마자
내용물이 무엇이냐고 묻는 사람을 외롭게 만들고 싶지 않은
사람
살아 있는 모든 것에 수수께끼를 발명하는 사람
질문의 출신지를 궁금해하는 사람
질문을 선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제 방에는 수신인 불명의 물음표 상자가 가득하고
발 디딜 때 없고
숨 막히는데
내일 수업에 들고 갈 질문을 고르다 보면
울게 돼요
매일
산타클로스가 되는 꿈을 꾼다
꿈속에서는 출처가 없는 질문을 던져도
선생님이 웃는다
명확한 출처가 되고 싶다
그러니까 산타는 없고
나의 소원을 엿들은 부모님이 계실 뿐이라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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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스럼의 시작노트
왜 이 세상은 질문에 관용적이지 못한 걸까요? 특히 한국 사회는 질문 자체를 매도하기로 마음먹은 듯합니다. ‘자유롭게 질문하는 분위기’를 추구하면서 정작 ‘질문에 급을 매기는’ 태도는 당연하다는 듯이 행동합니다.
저는 고등학교 3년간 매주 다음 수업에는 더 질 좋은 질문을 만들어가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렸습니다. 궁금한 것이 없다는 사실이 스스로의 멍청함을 드러낼 것이라고 생각하면 울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고민해서 쥐어 짜낸 질문을 던졌지만, “이번에는 질문 양이 적네?”, “질문들 수준이 별론데 공부 많이 안 했나봐?”라는 식의 반응을 받은 날에는 절망했습니다.
도대체 날카로운 질문은 어떻게 하는 걸까요?
질문이 날카로워야만 한다는 생각은 어떤가요?
그러나 저조차 질문에 수준이 다르다는 걸 완전히 부정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는 사실이…
슬픕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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냠냠 님의 정성스러운 코멘트 부스러들끼리 행복하게 읽었습니다! 한 명 한 명의 시를 깊이 감상해주셔서 감사해요.😊 냠냠 님의 코멘트 외에도 빵먹자들이 구글폼으로 남기는 코멘트는 잘 챙겨보고 있답니다! 덕분에 시를 계속 쓰고 읽을 용기가 나요. 6월 27일 기준 빵먹자들의 수가 70명이 되었습니다. 여러분들의 홍보가 없었다면 이만한 수의 구독자가 나오긴 힘들었을 거예요.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구글폼에 빵먹자들의 시나 감상평을 많이 남겨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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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 시 낭독 보이스 메일! 🌟🎤
보로빵이 부스러기들은 저번 주에 시 마니또를 했답니다!
사다리 타기로 마니또를 뽑고 서로가 떠오르는 시를 선물하기로 했어요!
그리고 그 낭독 파일을 빵먹자들과 함께 공유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시가 소리를 얻었을 때 넓어지는 외연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러니 빵먹자들도 자기 전 혹은 주말을 맞아 기쁜 기분으로 하교하며 시 낭독을 지긋이 들어보면 어떨까요?
그런 의미에서 앞으로 격주로 시 다섯 편과 함께 시 낭독 음성 파일도 하나씩 덧붙이고자 합니다.
시는 즐기는 것이니까요!
아래 동영상 링크를 타고 들어가시면 부스럼이 파란을 보고 떠올린 시, <요정고기>(김복희, 봄날의 책방) 낭독을 들으실 수 있습니다.
write by. 부스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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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아! 그리고 빵먹자들 중에 혹시 소보로빵의 메일이 메일함에 도착하지 않는 분이 계신다면 스팸함을 확인해주세요! 스팸함에도 없다면 메일링 마지막에 있는 구글폼으로 문의를 넣어주시면 바로 확인해드리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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