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학
임기린
말리 룩셈부는 외롭다 화장실에 앉아서 생각한다 이 방은 한 사람에게 너무 좁고 창문으로 냄새도 잘 빠지지 않는구나 아무도 나를 좋아하지 않을 거야 말리 룩셈부는 원래는 하얀색이었던, 깨진 줄눈 사이에서 번져 나온 검은 곰팡이 가득한 변기에 앉아 다만 똥 싸는 일에 죽을힘을 다하는 중이었다
(나는 말리 룩셈부가 낑낑대는 소리를 창문 밖에서 엿듣고 있었다 그렇다 그는 정말 죽을힘을 다하고 있었다)
말리 룩셈부는 마음처럼 되지 않는 일에 대해 생각하며 담배에 불을 붙인다 밤인데, 일어나서 지금껏 양치도 한 번 안 한 말리 룩셈부의 더러운 입을 지나 시커먼 속을 다 훑고 나서야 담배연기는 작은 창문 바깥으로 물결처럼 흘러간다 말리 룩셈부는 죽고 싶다고 생각한다 그는 꽤 높은 층수에 살았으므로 저 까만 창문 밖으로 뛰어내린다면 그를 둘러싼 모든 세계가 극장의 붉은 막이 무대를 감싸듯 은밀하고도 온전하게 끝날 수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말리 룩셈부는 근 삼 년 간 자신의 몸이 너무 거대해졌다는 사실을 불현듯 깨닫고 씨발씨발 중얼거린다
(그러니까 그는 살이 쪄서 이 작은 창문으로 투신할 수 없었던 거다 불쌍한 말리 룩셈부)
말리 룩셈부는 몇 번 더 배에 힘을 주면서 찢어지는 고통을 느낀다 마닐라 옌볜 광주 서울 말리 룩셈부는 자신이 잠시 살았던 거대한 도시들을 떠올린다 한 사람쯤은 사라져도 티도 나지 않던 거대한 도시들 그곳에서도 말리 룩셈부는 한 사람에게 너무 좁은, 똥냄새 나는 방에 앉아 다만 혼자 죽을 힘을 다해왔던 것이었다 그에게 혼자만의 방은 실패의 기록 휴지로 닦아내면 피 번지는 더러운
(나는 이 시점에서 참지 못하고 가여운 말리 룩셈부의 작은 창문으로 흘러들어가 거울 속으로 숨는다)
말리 룩셈부는 소용돌이 치며 어지럽게 멀어지는 똥을 본다 씨발 씨발 자리에서 일어난다 모서리에 녹물이 번진 뿌연 거울 웃는다 그럴 리 없는데 그냥 처웃는다 말리 룩셈부는 별안간 스스로가 존나 자랑스러우며 좁은 창문으로 어떻게든 몸을 잘 욱여넣으면 뛰어내리는 것에 성공할 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나는 존나 최고야! 눈을 부릅뜨고 주먹으로 거울을 쾅쾅 쾅쾅쾅
(나는 이쯤에서 여남은 담배연기와 함께 홀연히 창문 밖으로 빠져나간다)
다만 배가 아플 뿐이었는데 겨우 그것뿐이었는데 그마저도 안 되는 삶에 대해 말리 룩셈부는 생각한다 겨울이었는데 열려 있는 좆만한 창문 바깥에서 날아온 눈송이 하나가 말리 룩셈부의 볼에 가닿는다 물론 말리 룩셈부는 보지 못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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