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사와 시인
부스럼
1. 눈밭
눈길에서 도망은 어울리지 않는다. 그러나 용사, 전진하는 과거의 발자국을 역방향으로 밟는다. 가장 강한 상대에게 시비를 거는 게 자신의 일이라고 말한다. 그는 사랑에 취약하다 (이 사실은 전 국민이 알고 있고, 애초에 사랑에 가장 취약하기 때문에 그는 용사로 선발되었다.)
발자국의 옆구리는 막혀 있다. 아무리 간지럽혀도 "전혀. 아무렇지도 않은데."라고 말하는 너의 떨림 같다. ‘그만해’는 ‘사랑해’와 얼마큼 다른데? 도망가는(전진하는) 용사, 생각한다. “그만해”를 끝내 이해하지 못했던 선배를 욕하며 지새웠던 밤이 수천 번이고, 그럼에도 용사, 오늘도 “그만해” 대신 “사랑해”로 시작하는 일기를 쓴다. 사랑하면 그만둘 것 같아서
2. 발자국의 옆구리
“저거 하도 안 열어서 벽처럼 생각하는데 저거 벽 아니라 문이라고”*
그러나 그건 기차의 옆구리이기도 하다. 가장 약한 부분, 간지럽히기 좋고, 괴롭히기도 좋은 거길 건드리는 건... 좀... 그렇지 않나요......?
노크 소리가 언제부터 폭발음이 되었나
예의를 모르는구나
[방해하지 마시오]
라는 팻말이 무색하게
문을 두드리는 용사가 문밖에
눈밭에, 되돌아온 고향에 서 있다
지우가 태초마을로 돌아오는 기나긴 모험을 떠나듯
모험은 고향으로 가는 모든 길이고
순례자의 기도이자
태초의 사랑
소망
그러니까 방해하지 말라는 말, 믿지 않는다
나는 일기에도 거짓말을 쓰니까
3. 시인의 옆구리
“우리 사랑을 쓰지 않고 시를 써보자”
“사랑도 눈도 발자국도 미래와 과거도 없는 시를 써보자”
시인이 용사에게 제안한다
그 시인은 사랑보다 먼저 쓰인 사전을 알고 있다
그러나 용사, 전설의 사전을 찾기 위해 떠난 순례자
‘우리’로 시작하는 일기를 쓰는 법밖에 모르는
잠깐 그런데
용사:
너도 “우리”라고 말을 꺼내지 않았냐?
시인: ......
... 우리는
오늘 눈밭의 외나무다리에서 만났고
철천지원수가 아니라 단지 ‘그만해’와 ‘사랑해’ 만큼의
몰이해가 우리 사이에서 간지럽힘을 당하고 있고
세상의 모든 방이 앞이나 뒤가 아니라 복도의 옆에 새어있다는 점이 좋다
그렇게 시작되는 일기가 있다
일기장의 새로운 페이지를 펼치고
일기장을 펼치기 위해선 측면을 공격해야 한다는 걸 떠올린다
옆구리가 펼쳐지듯
활짝 펼쳐지는 과거와 미래
발자국과 발자국
“다면적으로 이해하세요”
일기장을 덮고 한입 베어 물면
셔벗 아이스크림의 사각거리는 식감, 상쾌하다
가장 다층적인 구조
눈
발자국
우리
로 시작하는 서사가 도망치고 있다
쿵))
문밖에서 시인이 노크하고 있다 |